
(사진 설명 : 추사가 쓴 봉은사 판전. 보통 불교 경판을 보관하는 곳은 대장각, 장경각이라고 하는데 강남의 봉은사는 '판전'이라고 했다. 추사박물관 소장)
추사박물관은 2013년 6월 개관했다. 추사 김정희가 말년을 지내다 숨을 거둔 과지초당이 과천에 있어서 추사와 인연이 되었기 때문이다. 과지초당은 1824년 청계산 옥녀봉 아래 돌무께(현 주암동)에 마련한 일종의 별장이다. 과지초당은 정원과 숲이 빼어나고, 연못의 아름다움을 갖추어 추사 가문의 절정의 역량을 상징하는 곳이다. 과지초당은 청계산과 관악산 사이에 있다하여 청관산옥(靑冠山屋)으로도 불리웠다.
추사 김정희가 과천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생부 유당 김노경(1766 ~ 1837) 이 주암동에 과지초당을 조성하면서 부터다. 당시 김노경이 청나라 학자 등전밀(1795 ~ 1870)에게 보낸 세 번째 편지에서 “저는 노쇠한 몸에 병이 찾아들어 의지가 갈수록 약화되는데 직무는 여전히 번잡해서 날마다 문서에 파묻혀 있습니다. 요사이 서울 가까운 곳에 집터를 구해서 조그마한 집을 하나 마련했는데 자못 정원과 연못의 풍모를 갖췄습니다. 연못을 바라보는 위치에 몇 칸을 구축해서 ‘과지초당’ 이라 이름했다.

봄이나 가을 휴가가 날 때 적당한 날을 가려 찾아가 지내면 작은 아취를 느낄만해서 자못 친구들에게 자랑할 만 합니다(1824.11.20)” 라고 했다.
1837년(현종3)에 김노경이 별세하자 추사는 부친의 묘역을 과지초당 인근 옥녀봉 중턱 검단에 모시고, 과지초당에서 3년상을 치루었고, 그 후 과천을 자주 찾아 과지초당에서 보내는 시일이 늘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제주 및 함경도 북청 유배에서 풀려난 1852년(철종3) 8월 이후 1856년 10월 10일 서거하기까지 말년 4년간을 과지초당에서 지내며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웠다. 과천시에서는 추사 선생의 삶과 예술을 기리고자 2007년 과지초당과 독우물을 추사로 78에 복원됐다.

추사 기념관은 그가 태어난 충남 예산과 유배지 제주도 그리고 과천에 각각 건립돼 있다. 과천 추사박물관에는 짐품도 있고, 복사본도 있다. 유명한 추사의 세한도 짐품은 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과천뉴스=유성근기자)